10년 만에 총재 바뀌는 일본은행, 출구전략 나설까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3-03-09 07:15   수정 2023-03-0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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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가즈오 차기 일본은행 총재 후보자가 현재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본다는 점은 기고문이나 인터뷰에서 확인된다. 부작용이 강한 정책에 신중하다는 평가답게 우에다 후보자는 특히 장단기금리조작(YCC)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고문에서는 "이례적인 금융완화 정책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작년 5월 인터뷰에서는 아베 신조 전 총리 정권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노선인 '리플레이션파'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우에다 후보자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의 효과가 나오지 않는 건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일본의 성장력이 떨어지면서 중립금리(경제를 자극하는 것도 냉각시키는 것도 아닌 적정금리)의 수준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기 디플레이션이 이어지면 사람들은 '어차피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에 빠져서 생산, 고용, 급여, 소비가 모두 침체된다.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물가가 오른다'라는 기대를 불러 일으키는게 중요하다.



일본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은 시장에 돈을 마구 풀면 사람들이 '이 정도로 돈이 풀렸으니 물가도 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이른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다.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서라도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불러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통화정책 전문가들을 '리플레이션파'라고 한다. 리플레이션파는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만 제대로 펼치면 일본을 장기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빼낼 수 있다는 '금융정책 만능론'의 신봉자들이기도 하다.

우에다 후보자는 이를 부정한 것이다. 그는 "먼저 일본의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기준금리를 인하할 여지도 있다"라고 설명한다. 경제의 기초체력을 기르지 않은 채 아베노믹스라는 경기부양책에만 의지해서는 한계에 부딪힌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우에다가 이끄는 일본은행이 지금까지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우에다 내정자와 7년간 일본은행 심의위원으로 함께 활동했던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경제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채시장의 기능 마비 등과 같은 부작용을 먼저 완화하고, 장단기금리조작의 틀은 남기면서 장기금리 상한폭을 확대하는 방식의 신중한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했다.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해제하는 시점은 일러야 내년으로 내다봤다. 상당수 외국인 투자가들이 '일본은행은 올해 기준금리를 올려서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해제할 것'으로 확신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을 결정하는 구성원의 변화도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의 수정을 예상하는 이유다.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은 원칙적으로 1년에 8차례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결정한다. 일본은행 총재와 2명의 부총재, 6명의 심의위원 등 총 9명의 정책위원회 멤버가 다수결로 금리를 올릴지 내릴지, 통화정책의 방향을 긴축으로 이끌지, 완화로 이끌지 결정한다.

총재 개인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의 중단을 주장해도 정책위원회 다수의 찬성이 없으면 정책 전환이 어렵다는 뜻이다, 기시다 정부는 2021년 10월 취임 이후 아베노믹스의 색깔을 지우는 작업을 조심스럽게 진행해 왔다.



아베 정권에서는 금융완화에 적극적인 리플레이션파가 대거 기용됐다. 2018년 구로다 총재가 연임했을 때 부총재에는 리플레이션파인 와카타베 마사즈미를 임명했다. 2017년 심의위원 인사에서도 금융완화에 신중했던 위원 2명의 후임 가운데 1명을 리플레이션파 이코노미스트인 가타오카 고지로 채웠다.

가타오카 심의위원은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멤버 가운데 가장 강경한 금융완화 주의자다. 5년 임기 내내 줄곧 "금융완화를 조정할 게 아니라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시다 내각은 가타오카 위원의 임기가 만료된 지난해 7월26일 다카다 하지메 오카산증권 글로벌리서치센터 이사장과 다무라 나오키 전 미쓰이스미토모파이낸셜그룹 전무를 임명했다. 두 위원 모두 당시 기자회견에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과 같은 대규모 금융완화의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금융완화의 출구는 항상 생각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강경한 금융완화 주의자를 내보내고 반대쪽 인사를 앉힌 셈이다. 이 인사에 아베노믹스의 충실한 계승을 주장하는 아베파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는 후문이다. 아베 정권이 임명한 또다른 금융완화 주의자 와카타베 부총재도 이달 말 임기가 끝난다.

이런 시점에서 차기 일본은행 총재로 우에다를 선택한 것을 두고 '기시다 내각이 금융완화를 조정할 사전준비 작업을 마쳤다고 선언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일본의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재무성 인사에서도 출구전략에 대비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은행은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50.3%를 갖고 있다. 일본은행이 초저금리에 국채를 무제한 사준 덕분에 일본 정부는 현금 살포식 경기부양책을 펼칠 수 있었다. 출구전략이 시작되면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을 줄이게 된다. 일본은행이 국채를 사주지 않으면 일본 정부는 새로운 국채 투자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



작년 6월 재무성은 국채와 화폐 발행, 일본은행 정책을 총괄하는 이재국장에 사이토 미치오 당시 도카이재무국장을 임명했다. 그의 이재국장 임명은 기시다 내각이 직접 고른 '발탁인사'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재무성 인사가 주목받은 건 사이토 국장이 '미스터 JGB(일본국채)'로 불릴 정도의 국채 전문가여서다. 앞으로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 축소에 대비해 국채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발탁됐다는 평가다.



새 일본은행 총재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이어가는 동시에 금융완화의 부작용을 해소하는 어려운 임무를 맡게 된다. 장기금리를 연 0.5% 이하로 묶어두는 장단기 금리 조작, 주식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시장에 유동성을 주입하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계속할지 결정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성급하거나 과도하게 대처한다면 장기금리 급등, 주가 폭락, 기업 도산 급증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과제들이다. 한 순간의 판단 착오만 일으켜도 일본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릴 수 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실패도 허용되지 않는 때에 우에다 후보자가 일본은행의 닻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마이니치신문은 차기 일본은행 총재가 처한 어려움을 “터지기 직전인 풍선의 바람을 조금씩 빼야 하는 역할"이라고 묘사했다. 오는 4월9일 취임할 우에다 내정자의 첫 금융정책결정회의는 4월27~28일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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